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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미 없는 분주함을 넘어”

    “의미 없는 분주함을 넘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두 종류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는 일상적인 이야기입니다.
    오늘 있었던 일, 관심사, 취미와 같은 가벼운 대화들입니다.

    또 하나는 그 일들 속에 담긴 의미와 목적, 그리고 삶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일상적인 대화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한 대화보다 서로의 생각과 가치관을 나누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대화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넓게 관계를 맺기보다, 몇 사람과라도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또한 서로를 이기기 위해 설전을 벌이는 대화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고 세워 주는 대화를 원합니다.

    어쩌면 제가 SNS 활동을 활발하게 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말들 속에서 시간을 보내기보다, 삶에 실제적인 의미를 더해 주는 일에 마음을 쏟고 싶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주님, 제가 시간을 어디에 사용해야 할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더 가치 있고 건설적인 길을 보여 주세요.”

    바쁘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도
    의미 없는 분주함에 휩쓸리지 않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방향을 따라 걸어가고 싶습니다.

    오늘 저녁도 그 답을 주님께 묻고 싶어집니다.

  • “너의 꿈은 내 안에서 이루어진다”

    “너의 꿈은 내 안에서 이루어진다”

    어릴 적 제 꿈 중 하나는 어려운 이웃과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속에 그 꿈을 다시 떠오르게 하셨고,
    요양보호사 공부를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배움이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할수록 현실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강사님들은 한결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어르신들과 친해지려면 배설물도 가까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습 경험을 들을 때마다
    사람을 섬긴다는 것이 결코 낭만적인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마음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약함과 불편함까지 품고 섬기는 사랑은
    사람의 결심만으로는 쉽지 않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제게 주셨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의 꿈은 내 안에서 이루어진다.”

    주님은 제가 꿈을 이루는 방법보다 먼저
    주님의 마음을 배우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랑은 멀리서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다가가는 것입니다.

    사랑은 아름다운 사람만 품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사람을 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섬김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이 내 안에 흘러넘칠 때 가능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부족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압니다.

    주님께서 주신 꿈은
    주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구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주님의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

  •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곳에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곳에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가지를 점점 더 깨닫게 됩니다.

    주님을 묵상하지 않고는,
    그분의 신실하심과 사랑을 삶으로 나타내며 살아간다는 것이
    제게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의 열심과 의지로는 잠시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주님과의 관계가 없다면 결국 사랑도, 순종도, 섬김도 오래 지속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는 제가 연약하고 부족했던 시간에도
    한 걸음씩 인도해 주셨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는 필요한 일터를 허락하셨고,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곳으로 보내셔서
    새로운 경험과 배움을 얻게 하셨습니다.

    때로는 새벽 근무가 있는 공장에서,
    때로는 물류센터에서,
    때로는 산후조리원에서 일하며
    제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시간들을 지나왔지만,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한 번도 저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다시 돌아보니,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가장 큰 은혜는
    문제가 없는 삶이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함께하시는 주님을 알아가는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다시 고백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의지합니다.”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보다,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곳에 저의 마음도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기뻐하고,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며,
    주님의 사랑이 필요한 곳에 작은 통로로 사용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께 순종하는 길은 때로 낮아지는 길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경험하게 되고,
    그 사랑을 세상에 나타내는 통로가 되어 갑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신실하신 주님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처음 주님을 사랑했던 그 마음,
    “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이 있기를 원합니다.”
    라고 고백했던 그 초심을 잃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과 함께라면 내일도 괜찮습니다.
    주님이 함께하시면 아무것도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그 신실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감사함으로 오늘을 살아갑니다. ❤️🙏🏻✨

  •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이름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이름

    얼마 전 오래된 기록들을 정리하다가 참 귀한 메모 한 장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2003년, 셋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가족들이 함께 모여 태어날 아기를 위해 기도하던 중, 큰아이가 방언으로 기도했고 그 내용을 통변하여 적어 놓은 기록이었습니다.

    오래된 노트에 적혀 있는 내용은 지금 읽어도 놀랍습니다.

    “그 아이는 내가 가장 귀하게 쓸 것이며…”

    “내가 특별히 그 아이의 이름을 지을 것이며…”

    “너의 영향력 안에 살 아이가 아니라 내 백성 안에 있다…”

    “그 아이가 네 안에 있을 때에도 나의 사랑을 보게 될 것이고…”

    “세상에 나갈 때까지 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될 것이다…”

    당시에는 그 말씀의 의미를 모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영이를 낳기 하루 전, 가족들이 함께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위해 기도하던 중 성령께서 제 마음에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딸을 원하지 않았느냐?”

    그 순간 제 마음속에서 한 고백이 흘러나왔습니다.

    “주님, 이 아이가 정말 딸이라면 이 아이는 예수님께 영광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고백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예영’ 이라는 이름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그때는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이름을 지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후 오래된 통변 기록을 다시 읽어 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미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 아이의 이름에 대해 말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2003년에 기록해 두었던 방언 통변 내용 일부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는 한순간에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2004년에는 방언 통변을 통해 말씀하셨고,

    출산 직전에는 이름을 주셨으며,

    2016년에는 그 일을 다시 기억하게 하셨고,

    지금은 또 그 기록을 꺼내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만약 이 사건을 2004년의 한 장면으로만 보았다면 그저 특별한 경험 정도로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20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 다시 바라보니 하나님께서 한 생명을 향해 얼마나 세밀하게 일하고 계셨는지가 보입니다.


    또 한 가지 마음에 깊이 남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름을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중요한 순간마다 이름을 바꾸시거나 직접 이름을 주셨습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야곱을 이스라엘로 부르셨습니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담긴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특별히 그 아이의 이름을 지을 것이다”라는 통변의 내용과 훗날 주어진 ‘예영’이라는 이름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무엇보다도 제 마음에 가장 크게 남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너의 영향력 안에 살 아이가 아니라 내 백성 안에 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자녀를 붙잡고 싶고, 좋은 길로 인도하고 싶고, 때로는 자신의 기대를 품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이는 네 것이 아니라 내 것이다.”

    이 말씀은 예영이에게 주신 말씀이기도 하지만, 부모인 저에게 주신 말씀이기도 했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생명이며,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길을 걸어갈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부모는 그 길을 위해 기도하며 함께 걸어가는 동역자일 뿐입니다.


    또 한 가지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잊어버린 은혜까지도 다시 기억나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래된 노트 한 장,

    몇 줄의 통변 기록,

    그리고 2016년에 남겨 두었던 짧은 페이스북 글이 오늘 다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지만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때가 되면 다시 기억하게 하시고,

    그 기억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그래서 이 기록은 단순히 예영이의 이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내가 너희 가정을 이렇게 인도해 왔단다.”

    오늘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붙들고 계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이름을 준비하시고, 한 사람의 인생을 계획하시며, 우리가 잊어버린 은혜까지도 다시 기억나게 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

  • 주님은 인격이십니다

    주님은 인격이십니다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저는 이 일을 2016년 12월 31일 페이스북에 기록해 두었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찬호는 제 옆에서 통변하며 기도 내용을 적어 내려갔습니다.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읽어 보니, 그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었는지 새삼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아래는 당시 기록해 두었던 실제 기도문 일부입니다.

    기도문 속에서 주님은 찬호에게 이렇게 물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너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니?”

    “나를 정말 소중하게 여기고 있니?”

    “나는 누구보다 너를 사랑한단다.”

    이 말씀을 읽으며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많으면 하나님을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신앙생활을 오래 하고, 여러 사역을 감당하면 하나님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격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한 사람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도 그 사람과 실제로 교제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적 지식도 중요하고 은사도 중요합니다. 사역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사역이 커지고 일이 잘 풀리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사역의 성공보다도 하나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요즘 저는 제 자신에게 질문해 봅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나는 누구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너무도 크고 사람들의 움직임은 너무도 분주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주님의 음성보다 세상의 소리에 더 민감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승리는 주님을 바라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을 알아 가는 삶 속에 참된 평안과 승리가 있습니다.

    오래전 찬호를 향해 하셨던 말씀을 다시 묵상하며, 저 역시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기 원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고백합니다.

    주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지금도 말씀하시고 사랑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한복음 10:27)

  •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부터 배우자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부터 배우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하신 사랑과 은혜를 경험한 우리는 먼저 자신의 존재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자만심이나 우월감에 빠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자신의 참된 가치를 발견하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관계의 출발점은 결국 자신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고,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로소 다른 사람도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다루시며 조금씩 변화시켜 가십니다.
    우리의 교만을 다루시고,
    상처를 다루시고,
    두려움을 다루시고,
    자기의와 고집을 다루시면서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조금씩 배워 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알아 가는 만큼,
    우리의 사랑도 함께 깊어지고 넓어집니다.

    어쩌면 사도 바울이 그토록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를 힘썼던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는 단순히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담긴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더욱 알기 원했습니다.

    모든 것은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인간의 사랑이 아닌 주님의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의 인격을 변화시킵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여전히 부족한 모습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완전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부족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지금까지 인도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그 사랑이 어떠한 사랑인지 더욱 알아 가기를 소망합니다.

    먼저 나 자신이,
    그리고 우리 가정과 가족들이,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

  • 아버지가 생각나는 날

    아버지가 생각나는 날

    17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문득 생각납니다.

    딸만 넷이었던 우리 집에서 아버지는 유난히 장녀였던 저에게 마음속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습니다.

    어린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있습니다.

    “너희 시대에는 여자도 장관이 되고 대통령도 된다.”

    그 당시만 해도 제게는 너무 먼 이야기처럼 들렸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늘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수상 이야기를 하시면서, 앞으로는 남자와 여자라는 이유로 기회가 제한되는 시대가 점점 사라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단순히 여성의 사회 진출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가능성과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우리나라에도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기대와 희망을 품었습니다.

    저 역시도 우리 사회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역사를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기대했던 모습도 있었고, 실망스러운 모습도 있었습니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시간이 지나며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한 사람의 등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남자 대통령이냐 여자 대통령이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가치와 어떤 마음으로 나라를 이끌어 가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정치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가정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책과 위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인격과 삶의 모습입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여자도 장관이 되고 대통령도 되는 시대”는 단순히 여성의 사회 진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에 따라 꿈을 꿀 수 있는 사회.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혹은 어떤 배경을 가졌기 때문에 기회가 제한되지 않는 사회.

    서로를 존중하며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고, 노력한 만큼 도전할 수 있는 사회.

    아마도 아버지는 그런 세상을 바라보셨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것은 다를 수 있겠지만, 지금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하며 꿈꿀 수 있는가를 돌아보게 됩니다.

    억압과 통제가 강해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새로운 가능성이 자라나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눈치를 보게 되고, 자신의 생각을 숨기게 되며, 도전하기보다 침묵하는 것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도전하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새로운 가능성도 열리게 됩니다.

    건강한 사회는 서로를 억누르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를 세워 주는 사회일 것입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 듣고, 경쟁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사회 말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버지가 하셨던 말씀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바라셨던 것은 여자도 대통령이 되는 세상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고 사람의 가치를 존중하는 세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옳은 말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사회.

    서로를 인정하고 격려할 수 있는 사회.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보다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품는 사회.

    다음 세대가 더 큰 꿈을 꾸고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사회.

    어쩌면 아버지가 바라셨던 세상도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세월이 흘러도 아버지의 목소리는 여전히 제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말씀은 제게 작은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사람은 떠나도 사랑으로 남겨 준 생각과 가치들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살아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지금의 시대를 보며 어떤 말씀을 하셨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오늘은 유난히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 주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며

    주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며

    신앙생활을 하면서 오랫동안 한 가지 착각 속에 살았던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하면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노력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한 가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억지로 무엇을 이루려는 삶에는 생각보다 열매가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가장 좋은 열매들은 내가 애써 만들어 낸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연스럽게 이루어 주신 경우가 많았습니다.

    최근 시작한 블로그도 그렇습니다.

    사실 오래전부터 경험한 것을 글로 써 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습니다.

    그때도 분명 경험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경험했으며,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경험은 아직 설익은 경험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알기는 했지만, 그 말씀이 삶 속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충분히 경험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알고 있는 것은 있었지만 쉽게 글이 써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주님께서는 그 말씀들을 실제 삶 속에서 하나씩 가르쳐 주셨습니다.

    실패와 회복을 통해 배우게 하셨고, 기다림과 순종을 통해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와서 보니 그 과정 자체가 글의 내용이 되어 있었습니다.

    억지로 글감을 찾으려 하지 않아도 글이 써집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셨던 것들,

    삶 속에서 배우게 하셨던 것들,

    실패와 회복 가운데 깨닫게 하셨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글이 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주님은 제게 먼저 말씀하셨고, 그 후에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오셨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무엇을 이루기 위해 애쓰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5)

    예전에는 이 말씀이 단순히 겸손하라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열매를 맺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우리는 씨를 뿌릴 수는 있습니다.

    물을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싹을 틔우고 자라게 하며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신앙의 성숙은 더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보다,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묻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문이 열릴지를 계산하기보다,

    주님께서 여신 문을 따라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최근 들어 더욱 마음이 모아지는 기도가 있습니다.

    “주님,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보다 주님께서 무엇을 하실 수 있는가를 바라보게 하소서.”

    “제가 열매를 만들려고 애쓰기보다 주님 안에 거하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어쩌면 신앙의 여정은 많은 것을 이루어 내는 과정이 아니라,

    주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 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의지함 속에서 맺히는 열매가 가장 건강하고 가장 오래가는 열매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다시 고백합니다.

    열매를 맺으려 애쓰기보다, 주님 안에 거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는 주님께서 친히 맺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

  • 26년 전 주님이 주셨던 말씀

    26년 전 주님이 주셨던 말씀

    최근 오래된 자료를 정리하다가 2000년 5월에 기록했던 글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을 따라 약 10일 동안 A4 용지 40장 분량의 글을 기록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짧은 기간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내용을 쓸 수 있었는지 놀랍기도 합니다.

    그 글의 중심에는 한 가지 공통된 주제가 있었습니다.

    “성령을 의지하라.”

    그리고 또 하나는,

    “가정을 회복하라.”

    였습니다.

    26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 보니, 세월이 흘렀음에도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당시의 글에는 사탄이 가장 먼저 무너뜨리려 하는 곳이 가정이며, 성도들이 하나 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갈등과 분열을 일으킨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지금의 시대를 돌아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기술은 발전했고 세상은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많은 가정들이 관계의 어려움 속에서 아파하고 있으며, 교회 역시 하나 됨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배워가고 있습니다.

    또한 글 곳곳에는 성령 충만에 대한 강조가 반복되어 있었습니다.

    그때도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도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자칫 경험을 의지하게 되고, 과거의 은혜를 붙잡고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어제의 은혜가 아니라 오늘의 동행을 원하십니다.

    어제 받은 은혜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성령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오래된 글을 다시 읽으며 한 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때 기록했던 40장의 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글을 기록하게 하셨던 하나님이 지금도 동일하게 살아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때 저를 붙드시던 주님께서 지금도 붙드시고 계십니다.

    그때 말씀하시던 주님께서 지금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사실 당시에는 그 말씀의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26년이라는 시간을 지나오며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왜 주님께서 그토록 반복해서 성령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셨는지 말입니다.

    사람은 변하고 환경은 변합니다.

    계획도 바뀌고 상황도 달라집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길만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어쩌면 지금 제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활동이 아니라, 2013년에 적어 놓았던 고백처럼

    “더 은밀하고, 더 고요하며, 더 조용하고, 더 한적한 시간”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분별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한 걸음씩 걸어가는 것.

    그것이 26년 전에도 중요했고, 지금도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들어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하나씩 열리고 있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고, 쿠팡 판매도 하게 되었으며, 새로운 만남과 기회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분명해지는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주님보다 앞서 갈 수 없고,

    아무리 바쁜 사역이라도 주님과의 교제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일을 잘하는 방법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법인 것 같습니다.

    세월은 흘렀지만,

    주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았고,

    성령의 역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다시 고백합니다.

    “주님, 제가 아니라 성령을 의지하게 하소서.” 🙏

  • 반석 위에 세워지는 가정

    반석 위에 세워지는 가정

    모래 위에 세운 집은
    겉으로는 견고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열심과 노력,
    자신의 의와 세상의 지혜만으로 세워진 집은
    비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면
    그 연약함이 드러나게 됩니다.

    상처는 쌓이고,
    서로를 향한 원망과 불평이 이어지며,
    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가족은 함께 있어도 마음은 멀어지고,
    사랑은 메말라 가며,
    생명의 기쁨은 점점 사라져 갑니다.

    반면 반석 위에 세운 집은 다릅니다.

    주님의 은혜 위에,
    말씀 위에,
    믿음과 신뢰,
    사랑과 인내,
    그리고 기도 위에 세워진 가정입니다.

    이런 가정도 어려움을 만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시련이 찾아올수록
    서로를 정죄하기보다 용서하고,
    상처를 붙들기보다 화해를 선택하며,
    자신을 주장하기보다 먼저 돌이키려 합니다.

    그래서 폭풍이 불어도
    오히려 더욱 하나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가정을
    주님의 사랑과 생명으로 충만하게 하시기 위해
    때로는 모래 위에 세워진 것들을 흔드십니다.

    우리의 교만,
    자신의 의,
    세상의 방법,
    사람의 열심이 무너질 때,
    비로소 주님의 은혜가 세워질 공간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을 다시 보게 되고,
    주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참된 안식이 찾아옵니다.

    주님 안에서 누리는 안식은
    환경이 주는 평안이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화입니다.

    그 평화가 머무는 가정에는
    감사가 살아나고,
    찬양이 흘러나오며,
    소망의 말들이 선포됩니다.

    서로를 향한 사랑의 고백이 이어지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집은
    어떤 원수의 공격과 어떤 폭풍 속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반석 위에 세워진 집이 되어 갑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태복음 7:24)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의 가정을
    반석 위에 세워 가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