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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부터 배우자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부터 배우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하신 사랑과 은혜를 경험한 우리는 먼저 자신의 존재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자만심이나 우월감에 빠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자신의 참된 가치를 발견하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관계의 출발점은 결국 자신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고,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로소 다른 사람도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다루시며 조금씩 변화시켜 가십니다.
    우리의 교만을 다루시고,
    상처를 다루시고,
    두려움을 다루시고,
    자기의와 고집을 다루시면서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조금씩 배워 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알아 가는 만큼,
    우리의 사랑도 함께 깊어지고 넓어집니다.

    어쩌면 사도 바울이 그토록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를 힘썼던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는 단순히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담긴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더욱 알기 원했습니다.

    모든 것은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인간의 사랑이 아닌 주님의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의 인격을 변화시킵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여전히 부족한 모습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완전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부족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지금까지 인도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그 사랑이 어떠한 사랑인지 더욱 알아 가기를 소망합니다.

    먼저 나 자신이,
    그리고 우리 가정과 가족들이,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

  • 아버지가 생각나는 날

    아버지가 생각나는 날

    17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문득 생각납니다.

    딸만 넷이었던 우리 집에서 아버지는 유난히 장녀였던 저에게 마음속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습니다.

    어린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있습니다.

    “너희 시대에는 여자도 장관이 되고 대통령도 된다.”

    그 당시만 해도 제게는 너무 먼 이야기처럼 들렸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늘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수상 이야기를 하시면서, 앞으로는 남자와 여자라는 이유로 기회가 제한되는 시대가 점점 사라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단순히 여성의 사회 진출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가능성과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우리나라에도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기대와 희망을 품었습니다.

    저 역시도 우리 사회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역사를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기대했던 모습도 있었고, 실망스러운 모습도 있었습니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시간이 지나며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한 사람의 등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남자 대통령이냐 여자 대통령이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가치와 어떤 마음으로 나라를 이끌어 가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정치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가정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책과 위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인격과 삶의 모습입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여자도 장관이 되고 대통령도 되는 시대”는 단순히 여성의 사회 진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에 따라 꿈을 꿀 수 있는 사회.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혹은 어떤 배경을 가졌기 때문에 기회가 제한되지 않는 사회.

    서로를 존중하며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고, 노력한 만큼 도전할 수 있는 사회.

    아마도 아버지는 그런 세상을 바라보셨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것은 다를 수 있겠지만, 지금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하며 꿈꿀 수 있는가를 돌아보게 됩니다.

    억압과 통제가 강해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새로운 가능성이 자라나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눈치를 보게 되고, 자신의 생각을 숨기게 되며, 도전하기보다 침묵하는 것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도전하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새로운 가능성도 열리게 됩니다.

    건강한 사회는 서로를 억누르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를 세워 주는 사회일 것입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 듣고, 경쟁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사회 말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버지가 하셨던 말씀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바라셨던 것은 여자도 대통령이 되는 세상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고 사람의 가치를 존중하는 세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옳은 말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사회.

    서로를 인정하고 격려할 수 있는 사회.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보다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품는 사회.

    다음 세대가 더 큰 꿈을 꾸고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사회.

    어쩌면 아버지가 바라셨던 세상도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세월이 흘러도 아버지의 목소리는 여전히 제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말씀은 제게 작은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사람은 떠나도 사랑으로 남겨 준 생각과 가치들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살아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지금의 시대를 보며 어떤 말씀을 하셨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오늘은 유난히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 주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며

    주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며

    신앙생활을 하면서 오랫동안 한 가지 착각 속에 살았던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하면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노력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한 가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억지로 무엇을 이루려는 삶에는 생각보다 열매가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가장 좋은 열매들은 내가 애써 만들어 낸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연스럽게 이루어 주신 경우가 많았습니다.

    최근 시작한 블로그도 그렇습니다.

    사실 오래전부터 경험한 것을 글로 써 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습니다.

    그때도 분명 경험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경험했으며,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경험은 아직 설익은 경험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알기는 했지만, 그 말씀이 삶 속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충분히 경험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알고 있는 것은 있었지만 쉽게 글이 써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주님께서는 그 말씀들을 실제 삶 속에서 하나씩 가르쳐 주셨습니다.

    실패와 회복을 통해 배우게 하셨고, 기다림과 순종을 통해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와서 보니 그 과정 자체가 글의 내용이 되어 있었습니다.

    억지로 글감을 찾으려 하지 않아도 글이 써집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셨던 것들,

    삶 속에서 배우게 하셨던 것들,

    실패와 회복 가운데 깨닫게 하셨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글이 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주님은 제게 먼저 말씀하셨고, 그 후에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오셨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무엇을 이루기 위해 애쓰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5)

    예전에는 이 말씀이 단순히 겸손하라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열매를 맺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우리는 씨를 뿌릴 수는 있습니다.

    물을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싹을 틔우고 자라게 하며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신앙의 성숙은 더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보다,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묻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문이 열릴지를 계산하기보다,

    주님께서 여신 문을 따라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최근 들어 더욱 마음이 모아지는 기도가 있습니다.

    “주님,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보다 주님께서 무엇을 하실 수 있는가를 바라보게 하소서.”

    “제가 열매를 만들려고 애쓰기보다 주님 안에 거하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어쩌면 신앙의 여정은 많은 것을 이루어 내는 과정이 아니라,

    주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 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의지함 속에서 맺히는 열매가 가장 건강하고 가장 오래가는 열매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다시 고백합니다.

    열매를 맺으려 애쓰기보다, 주님 안에 거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는 주님께서 친히 맺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

  • 26년 전 주님이 주셨던 말씀

    26년 전 주님이 주셨던 말씀

    최근 오래된 자료를 정리하다가 2000년 5월에 기록했던 글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을 따라 약 10일 동안 A4 용지 40장 분량의 글을 기록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짧은 기간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내용을 쓸 수 있었는지 놀랍기도 합니다.

    그 글의 중심에는 한 가지 공통된 주제가 있었습니다.

    “성령을 의지하라.”

    그리고 또 하나는,

    “가정을 회복하라.”

    였습니다.

    26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 보니, 세월이 흘렀음에도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당시의 글에는 사탄이 가장 먼저 무너뜨리려 하는 곳이 가정이며, 성도들이 하나 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갈등과 분열을 일으킨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지금의 시대를 돌아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기술은 발전했고 세상은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많은 가정들이 관계의 어려움 속에서 아파하고 있으며, 교회 역시 하나 됨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배워가고 있습니다.

    또한 글 곳곳에는 성령 충만에 대한 강조가 반복되어 있었습니다.

    그때도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도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자칫 경험을 의지하게 되고, 과거의 은혜를 붙잡고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어제의 은혜가 아니라 오늘의 동행을 원하십니다.

    어제 받은 은혜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성령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오래된 글을 다시 읽으며 한 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때 기록했던 40장의 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글을 기록하게 하셨던 하나님이 지금도 동일하게 살아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때 저를 붙드시던 주님께서 지금도 붙드시고 계십니다.

    그때 말씀하시던 주님께서 지금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사실 당시에는 그 말씀의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26년이라는 시간을 지나오며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왜 주님께서 그토록 반복해서 성령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셨는지 말입니다.

    사람은 변하고 환경은 변합니다.

    계획도 바뀌고 상황도 달라집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길만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어쩌면 지금 제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활동이 아니라, 2013년에 적어 놓았던 고백처럼

    “더 은밀하고, 더 고요하며, 더 조용하고, 더 한적한 시간”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분별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한 걸음씩 걸어가는 것.

    그것이 26년 전에도 중요했고, 지금도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들어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하나씩 열리고 있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고, 쿠팡 판매도 하게 되었으며, 새로운 만남과 기회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분명해지는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주님보다 앞서 갈 수 없고,

    아무리 바쁜 사역이라도 주님과의 교제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일을 잘하는 방법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법인 것 같습니다.

    세월은 흘렀지만,

    주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았고,

    성령의 역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다시 고백합니다.

    “주님, 제가 아니라 성령을 의지하게 하소서.” 🙏

  • 반석 위에 세워지는 가정

    반석 위에 세워지는 가정

    모래 위에 세운 집은
    겉으로는 견고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열심과 노력,
    자신의 의와 세상의 지혜만으로 세워진 집은
    비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면
    그 연약함이 드러나게 됩니다.

    상처는 쌓이고,
    서로를 향한 원망과 불평이 이어지며,
    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가족은 함께 있어도 마음은 멀어지고,
    사랑은 메말라 가며,
    생명의 기쁨은 점점 사라져 갑니다.

    반면 반석 위에 세운 집은 다릅니다.

    주님의 은혜 위에,
    말씀 위에,
    믿음과 신뢰,
    사랑과 인내,
    그리고 기도 위에 세워진 가정입니다.

    이런 가정도 어려움을 만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시련이 찾아올수록
    서로를 정죄하기보다 용서하고,
    상처를 붙들기보다 화해를 선택하며,
    자신을 주장하기보다 먼저 돌이키려 합니다.

    그래서 폭풍이 불어도
    오히려 더욱 하나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가정을
    주님의 사랑과 생명으로 충만하게 하시기 위해
    때로는 모래 위에 세워진 것들을 흔드십니다.

    우리의 교만,
    자신의 의,
    세상의 방법,
    사람의 열심이 무너질 때,
    비로소 주님의 은혜가 세워질 공간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을 다시 보게 되고,
    주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참된 안식이 찾아옵니다.

    주님 안에서 누리는 안식은
    환경이 주는 평안이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화입니다.

    그 평화가 머무는 가정에는
    감사가 살아나고,
    찬양이 흘러나오며,
    소망의 말들이 선포됩니다.

    서로를 향한 사랑의 고백이 이어지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집은
    어떤 원수의 공격과 어떤 폭풍 속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반석 위에 세워진 집이 되어 갑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태복음 7:24)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의 가정을
    반석 위에 세워 가시기를 소망합니다.

  • 하나님이 모든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이 꼭 축복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든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이 꼭 축복은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시면 그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응답은 은혜이며 사랑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조금 다른 모습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하나님께 고기를 달라고 끊임없이 원망하며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를 들으시고 메추라기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파리하게 하셨도다”
    (시편 106:15)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셨지만, 그들의 영혼은 오히려 메말라 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요구였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더 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문제 해결을,
    하나님의 뜻보다 내 계획의 성취를,
    하나님의 인도하심보다 내가 원하는 결과를 더 구할 수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택을 존중하시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허락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해서 반드시 영적으로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셨음에도 영혼은 더욱 메마를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응답을 미루시거나 거절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에는 이해되지 않고 답답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것이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도 응답을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응답되지 않는 것을 아쉬움이나 손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돌보시는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건강하게 자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시는 것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신앙이 성숙할수록 기도의 내용도 조금씩 변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 “주님, 이것을 주세요.”
    • “이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라는 기도가 많지만,

    점차

    • “주님, 주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 “제가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 “주님을 더 알게 해 주세요.”

    라는 기도가 늘어나게 됩니다.

    기도의 목적은 원하는 것을 얻는 데 있지 않습니다.

    기도의 가장 큰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고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데 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큰 축복은 기도가 응답되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제가 원하는 것을 주시는 것보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알게 하소서.”

    원하는 것을 얻는 것보다 하나님을 얻는 것이 더 큰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

    한 가지 기억했으면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시지만, 기도 응답 자체가 신앙의 목적은 아닙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더 큰 은혜입니다.

    기도가 응답되었느냐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더 알게 되었는가?”

    하나님을 얻는 사람은 응답이 있어도 감사하고, 응답이 늦어져도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가장 큰 축복은 이미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

    주님이 주시는 복도 귀하지만,

    가장 큰 복은 주님 자신입니다.

    원하는 것을 얻는 것보다

    주님을 얻는 것이 더 큰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곧 복이시기 때문입니다. ✨🙏

  •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이 진정으로 사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이 진정으로 사는 길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 음성을 바르게 분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기 어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마음 때문입니다.

    조급함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합니다.
    빨리 답을 얻고 싶고, 빨리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집착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마음속에 원하는 결론을 정해 놓고 하나님께 묻는다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에 대한 동의를 구하게 됩니다.

    욕심 역시 하나님의 음성을 흐리게 만듭니다.
    하나님보다 얻고 싶은 것이 더 커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보다 자신의 욕망의 소리를 더 크게 듣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과정은 단순히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아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특히 우리는 사단의 음성과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단의 음성은 처음에는 매우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존심을 만족시키고, 조급함을 부추기며, 스스로 높아지게 만듭니다.
    또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더 중요하게 여기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영혼의 메마름입니다.
    감사가 사라지고, 사랑이 식어 가며, 마음은 점점 강퍅해집니다.
    겉으로는 옳아 보일지라도 하나님과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반면 하나님의 음성은 때로 우리의 생각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다리라고 말씀하시기도 하고,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시기도 하며,
    용서하라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의 교만을 낮추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하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도록 이끕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갈수록 우리는 자신을 자랑하기보다 하나님을 높이게 됩니다.
    마음에는 평안이 찾아오고,
    영혼은 더욱 부드러워지며,
    겸손함이 자라나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가장 확실한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감정은 변할 수 있고,
    생각은 흔들릴 수 있으며,
    확신마저 틀릴 수 있습니다.

    조급함도 하나님의 음성처럼 느껴질 수 있고,
    욕심도 믿음처럼 느껴질 수 있으며,
    집착도 사명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사단은 우리의 감정을 이용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강한 확신이 들어도 말씀과 충돌한다면 다시 점검해야 합니다.

    반대로 지금은 이해되지 않고 기다림이 필요하더라도,
    말씀의 원리와 일치한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음성을 따라가는 사람이 되기 전에,
    먼저 말씀을 기준으로 분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이유는 단순히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이 진정으로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자신의 뜻을 이루는 것이 성공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 안에 거하는 것이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판단을 더 신뢰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참된 생명과 평안은 자신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고 그 음성에 순종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그 길이 때로는 느리고 답답하게 보일 수 있지만,
    결국 가장 안전하고 가장 복된 길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조급한 사람에게는 기다림을 가르치시고,
    집착하는 사람에게는 내려놓음을 가르치시며,
    욕심을 붙드는 사람에게는 만족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점점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를 높이는 방향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끕니다.

    그 음성을 따라갈수록 우리의 영혼은 강해지기보다 겸손해지고,
    강퍅해지기보다 부드러워지며,
    자신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기준은 말씀이며, 그 음성에 순종하는 것이 진정으로 사는 길입니다.

  • 주님은 인격이십니다

    주님은 인격이십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그 음성을 듣는 데서 멈추지 않고 순종으로 응답합니다.

    주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살아 계신 인격이십니다.
    우리를 기계적으로 대하지 않으시고, 사랑의 관계 안에서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자신을 사랑하여 따르는 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때로는 성경 말씀을 통해, 때로는 성령의 감동을 통해, 때로는 삶의 환경과 사람들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쉽게 깨닫지 못할 때에도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신실하신 사랑과 인애로 우리를 가르치시며, 당신의 지혜로 바른 길을 보여 주십니다.

    우리는 종종 주님을 안다는 것을 성경 지식을 많이 아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알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로고스(Logos)의 말씀을 많이 아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안다는 것은 로고스의 말씀 가운데서 오늘 내게 들려주시는 레마(Rhema)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순종하는 관계 속에서 그분을 알아 가는 것입니다.

    사람도 책으로만 알 수 없듯이 주님도 지식만으로는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그분과 동행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주님의 성품과 사랑을 더욱 깊이 알아 가게 됩니다.

    반면에 우리가 계속해서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불순종한다면 어떨까요?

    주님은 인격이시기에 우리의 태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물론 주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불순종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둔하게 만들고, 우리는 점점 주님의 음성을 듣기 어려워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계속 외면하면 관계가 멀어지는 것처럼,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음성은 순종하는 사람에게 더욱 선명하게 들립니다.

    주님을 안다는 것은 많은 지식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함으로 그분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 관계 속에서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주님의 마음을 배우며, 조금씩 주님을 닮아 가게 됩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한복음 14:15)

    주님은 오늘도 사랑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 “주님은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기로 결단하고 작정하면, 주님은 결코 침묵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읽을 때 한 구절이 마음에 깊이 새겨지기도 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평안함과 확신을 주시기도 하며,

    예배를 드리는 중에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하시기도 합니다.

    때로는 꿈을 통해 깨우쳐 주시고,

    믿음의 지체들과의 대화를 통해 필요한 답을 얻게 하시기도 합니다.

    또한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을 보게 하시고,

    일상 가운데 주시는 작은 깨달음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이끌어 가시기도 합니다.

    주님은 단지 우리가 그분에 대해 아는 것에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실제로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주님도 우리와 함께 걸으며 말씀하시고 우리의 삶에 참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우리는 그 음성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 말씀이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성경을 기준으로 분별하고,

    기도하며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분별된 말씀 앞에서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순종은 주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말씀을 외면한다면 진정한 교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그 말씀을 마음에 품으며,

    삶 속에서 순종으로 응답합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귀 기울일 때,

    우리는 날마다 더 깊은 교제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한복음 14:15)

  • 건강한 표현은 건강한 내면에서 시작된다

    건강한 표현은 건강한 내면에서 시작된다

    건강한 삶이란 단순히 몸이 아프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건강하게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삶의 건강함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힘은 건강한 내면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때로는 칭찬을 듣기도 하고, 때로는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건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평가와 감정에 자신의 삶 전체를 맡기지 않습니다.

    자신을 건강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은 남의 말에 무조건 휘둘리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생각만을 고집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을 줄 알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정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내면에 올바른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기준이 없는 사람은 상황과 사람에 따라 쉽게 흔들립니다. 어떤 사람 앞에서는 이 말을 하고, 또 다른 사람 앞에서는 저 말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중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건강한 기준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점검할 수 있습니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중요한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준은 삶의 경험을 통해 형성되기도 하지만,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더욱 분명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건강한 표현을 위해서는 정서적인 안정감이 필요합니다. 마음이 불안하면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작은 일에도 과도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반대로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면서도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습니다.

    화가 날 때는 화가 난 이유를 차분하게 말할 수 있고, 슬플 때는 슬픔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절망에 빠지지 않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감정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지도 않습니다.

    건강한 표현은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관철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건강한 표현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가운데 진실하게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강한 표현은 관계를 무너뜨리기보다 관계를 세우고, 갈등을 키우기보다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결국 자신을 건강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 건강한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정서적 안정감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은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기보다 자신의 삶을 책임 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건강한 삶은 자신의 마음을 숨기거나 억누르는 삶이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바르게 이해하고 건강하게 표현하는 삶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표현은 건강한 내면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올바른 기준을 세우고 정서적 안정감을 배워갈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 갑니다.